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심리학

부자아빠, 가난한 아빠 #3

by 탐탐이 2023. 11. 27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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▶ 나는 살아오는 내내 종종 프로스트의 시를 떠올리곤 했다. 학식이 높은 내 아버지의 조언과 돈에 관한 그의 태도를 따르지 않기로 한 것은 사실 아픈 결정이었다. 하지만 그것은 이후 이어질 내 삶의 모습을 규정할 결정이었다. 그렇게 결심을 굳히자마자 돈에 대한 나의 학습이 시작되었다. 부자 아버지는 내가 서른아홉 살이 될 때까지 삼십 년 동안 가르침을 베풀었다. 더디게 돌아가는 내 머리에 그분이 애써 주입하려 한 그 모든 것을 내가 완전히 이해하고 습득했다는 판단이 섰을 때, 그분은 가르침에 종지부를 찍었다.

 

돈은 힘의 한 형태다. 하지만 그보다 강력한 것은 돈에 관한 지식이다.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, 돈의 작용 원리에 관한 지식만 있으면 돈을 통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를 쌓을 수 있다. 긍정적인 사고 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. 왜냐하면

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에서 돈의 작용 원리에 대해 전혀 배우지 못하고, 그래서 평생을 돈을 위해 일하는 데 바치기 때문이다.

 

처음 돈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홉 살에 불과했기 때문에 부자 아버지는 간단한 교훈부터 가르쳐 주었다. 그러나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이 여섯 가지 주요 교훈으로 압축되어 삼십 년 동안 반복되었다. 이 책은 바로 그 여섯 가지 교훈으로 압축되어 삼십 년 동안 반복되었다. 이그 여섯 가지 교훈에 관해 설명한다. 나는 부자 아버지가 내게 전해 준 방식 그대로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할 것이다. 여기ㅏ에 소개된 교훈들은 해답이 아니라 지침임을 밝힌다. 이 지침은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이, 변화와 불확실성이 늘고 있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더욱 부자가 되도록 도울 것이다.

 

- 가난한 자들과 중산층은 돈을 위해 일한다. / 부자들은 돈이 그들을 위해 일하게 만든다.

 

"아빠, 저게 부자가 되는 법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?"

아버지는 석간신문을 내려놓았다. "왜 부자가 되고 싶은 거니?"

"왜냐하면 오늘 지미 엄마가 새로 산 캐딜락을 몰고 왔는데, 아이들과 함게 주말에 해변 별장에 간다고 했어요. 지미가 친구 세 명을 데리고 가는데, 마이크와 나는 초대받지 못했어요. 우리가 '가난한 아이들'이라서 초대하지 않은 거래요."

 

아버지는 묵묵히 머리를 젓고는 콧잔등 위로 안경을 추켜올렸다. 그러고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. 나는 선 채로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렸다. 때는 1956년이었고, 나는 아홉 살이었다. 운명의 장난이었는지, 나는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공립학교에 다녔다. 우리가 살던 곳은 사탕수수 농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었다. 그 대규모 농장의 관리인과 의사, 사업가, 은행가 같은 부유한 사람들은 이 육 년제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다. 그 아이들은 졸업 후 대개 사립 중고등학교로 진학했다. 우리 가족이 부자들이 주로 살고 있는 거리의 한쪽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, 내가 그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다. 우리가 그 거리의 건너편에 살았더라면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다니는 다른 학교에 들어갔을 것이다. 그 아이들과 나는 6학년을 마치면 공립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었다. 그들과 나는 사립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.

 

마침애 아버지는 신물을 내려놓았다. 아버지가 생각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.

"아들아..." 아버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. "부자가 되고 싶으면 돈 버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."

그말의 진정한 의미가 "그렇게밖에는 말해 줄 게 없구나." 혹은 "나는 답을 모르니 곤란한 질문 하지마라."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.

 

다음 날 아침, 나는 제일 친한 친구인에게 아버지가 한 말을 얘기했다. 내가 아는 한 이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너와 나였다.  너 역시 운명의 장난으로 이 학교에 들어왔다. 누군가가 그려 놓은 학군 때문에 우리가 부자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것 이다. 사실 우리는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지만 가난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. 모든 아이들이 늘 새 야구 글러브와 새 자전거, 그 밖에 온 갖 것들을 자랑했기 때문이다.

 

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에게 의식주와 관련된 기본적인 것은 뒷받침 해 주었다.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.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하곤 했다. "갖고 싶은 게 잇으면 네 스스로 일을 해서 얻도록 해라." 갖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, 아홉 살 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.

 

그렇게 해서 그 토요일 아침에  내 최초의 사업 파트너가 되었다. 우리는 오전 내내 머리를 쥐어짜며 돈 벌 방법을 궁리했다. 중간중간 우리는 그 '잘난 애들'이 지미네 해변 별장에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고 있을지 상상해 보기도 했다. 마음이 조금 쓰라렸지만, 그 쓰라림은 약이 되었다. 그 때문에 계속해서 돈 버는 방법을 연구했기에 하는 말이다. 

 

 

 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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